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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장갑악귀 무라마사/마왕편(魔王編)-2

장갑악귀 무라마사 마왕편(魔王編) - 39

이번 화는 마왕편 전체를 통틀어서도 텍스트 분량이 가장 많습니다.

덕분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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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불어닥친다.

밀집해서 덮치는 비의 압력은, 모래폭풍이나 마찬가지다.


철의 기체가 나뭇잎처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명하는 대로 위태롭게 춤춘다.

배경을 꾸밀 생각인지, 울려퍼지는 천둥소리――



「이번은 폭풍우 한복판인가!」






《일단 단언해두지만, 내가 행선지를 고르는 게 아니니까―!》







말해도 별 수 없는 불평과, 말할 것까지도 없는 변명으로 응수하는 나와 무라마사.

물론 심리적인 여유의 표현이 아니라, 어느 쪽이냐면 그 반대였다.


……조금 더 나은 시공간으로 날려다오.

그것이 무리라면, 적어도 빨리 다음 시공간으로 데리고 나갔으면 한다.


보낼 곳 없는 요망을 흉중에서 놀리고 있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전장의 왕인 무자도, 자연현상에게는 전혀 무력하다.


빨리 수정력이 작용해주지는 않는 걸까.



《미도우!

봐, 저길 봐줘!》





「아래?」









눈을 돌린다.

그리해서 처음으로 깨달았지만, 아래에 있는 것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였다.





하늘에 뒤지지 않게 미쳐날뛰고 있는 해면을, 그다지 크지도 않은 배가 감돌고 있다.


배…………배?





배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저러한 형상의 배는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선박보다, 세련된――선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는, 미래인가?


조금 전의 고성은 현재 내지 과거라고 생각되었지만.

저 배로부터 짐작하기에, 이 시공간은 나의 시대보다 약간――수년인지 수십년인지――시간이 진행된 세계라 생각된다.


정말 그렇다면, 다행스런 일이다.

인류세계가 “신” 에게 멸해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만, 정말로 미래인지는 알 수 없고, ·· · ·· 미래로 날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현 상황은 이미 나의 이해를 벗어나 있었다.



《저 배……가라앉을 것 같은데?》






「그렇구나……당징이라도」







우수한 배이겠지만, 지금은 조각배나 다름없다.

파도의 포학에 그저 히롱당하고 있다.


돕는다, 라는 선택은 머리 속에서부터 배제했다.

그것은 확실히, 이 세계에 대한 깊은 관여가 될 것이다.


손을 내밀어선 안 된다.

이 시공간의 일은 이 시공간의 인간에게 맡긴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부터의 생각도 있었다.


폭풍우 가운데에 머무는 것 자체가, 이 세계와의 관계라고 말한다면 그렇다.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자세제어를 잃어,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저 배안에 들어가면, 일단 비바람은 견딜 수 있겠지.

혹은 그것이, 가장 이 시공간의 사상과 관계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인가……?


그럼,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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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심정토로를 할 어휘도 다했다.


불타고 있다.

근처 일대가 시끄럽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것은……야산의 화재 한복판인가.

천장은 없고, 발 아래는 토사. 적어도 실내는 아닌듯하다.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은 풀잎과 나무들.


――아니. 그 밖에도.



《뭐야……이건》






《어디의 지옥이야?》






「……디테(Dité)[각주:6]일까」







그 “신곡commedia” 에서 구가되는 화염지옥.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오는 것은, 재치 있는 마음 같은 것과는 거의 연이 없는 인간이었더라도――즉 나라도, 간단했다.


그저 솔직하게 시각정보를 평가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타고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다 셀 수가 없는 사람, 사람, 사람.


인종도 성별도 알 수 없다. 모두 이미 탄화했다. 하지만 원형은 유지하고 있어서, 틀림없이 인간이라고 알 수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의 형태였다. 그 잔해였다.


화염과 시체 속에서 우두커니 서있는다.

갑철에 덮인 나는, 떳떳하지 못하다 느껴질 정도의 완강함으로 불의 맹위를 버틸 수 있었다.


……이 광경은 무엇일까.


단순한 화재와, 불행한 희생자인가?

그렇게 보자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의심을 품으면, 그것은 한없이 펼쳐져간다.


어째서 이런 곳에서, 이처럼 모여서 소사(焼死)한 것인가.

흩어져서 달아나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으면, 달아날 수 없었던 것일까.

――어째서?



《이 사람들……에미시야……》






「……아는 건가」






《응……왠지 모르게.

아마도, 모두, 나의 동족이야……》





《……하지만, 조금 다른데……?》







조금 다르다?

에미시와……?


서양의 에미시 종족――하얀 에미시Judea, 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발 아래를 보면, 식물이 야마토답지 않다. 유럽의 그것에 가까웠다.


하얀 에미시. 유럽. 떼죽음.

……무언가 연결되는 것 같지만…….



「!!」







사색이 급정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시야의 구석, 불꽃이 흔들거리는 저 편에――지금 일순간만,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즉, ····.

……아직 살아있다! 


<저벅>



《기다려, 미도우!》






「뭐냐!?」







이 절박한 때에, 무엇을――



《상황을 잊지 말아 줘!

여기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야!》





「――――」






《이 세계에 깊이 관련되면, 원래 시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

그래도 좋아?》






……그래, 그랬었다.


수정력이 작용할 때까지, 주위와의 간섭을 피하며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불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만, 검주의 수호만 있으면 가능하다.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하물며, 이 세계의 주민을 구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크」







발을 멈추고,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던 방향을 바라본다.

불꽃이 다시 크게 흔들려, 그 모습을 나에게 드러냈다.


작은 몸. 비치는듯이 하얀 피부. 길다란 귀――

읽은 것은 맞았던 모양이다. 적어도 그 유일한 생존자는 하얀 에미시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는 이쪽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자신을 감싸려는 불꽃의 소용돌이에 시선을 쏟고 있다.


――그녀.



「저 사람은……」







여성이라 깨닫는 것과 동시에, 뇌리에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알고 있다. 나는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요코하마 기지에서.

볼프 교수와 챠챠마루가 나에게 소개한――단조뢰탄.


공동(空洞) 같았던 소녀.










왜 여기에?

……아니, 틀렸다. 지금 자신의 마음에 물어야 하는 것은, 그런 긴급성이 없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돕지 않아도 되는 건가.

정말로 버려도 되는 것인가.


결국,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정말로 단조뢰탄의 일부였었는지, 그것마저 확신은 없다.


버려도 좋다고 생각되는 근거는 전혀 없다.


확실한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사실 뿐이다.

하얀 에미시 소녀가, 불꽃에 휘감겨 죽으려 하고 있다.


돕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도우면, 나는 원래 시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 세계에서 “신” 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사라지고――결과, 얼마나 많은 것이 사라질까.





하지만 생각해봐라.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목숨.

전자가 무겁다고, 누가 결정했지?


지금 거기서 위기에 직면한 목숨을 구해서 뭐가 나쁜가.

아니, 그래서야말로 진정 고귀한 행동인 것 아닌가……?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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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다.
잔물결이 밀어닥치는 소리 외에, 귀를 번거롭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의 밤, 어딘가의 해변.
요사스런 기척도, 소용돌이치는 바람도, 불꽃의 난폭함도, 여기에는 없었다. 온화한 세계였다.


「……아직인가.
하지만 한숨 돌렸구나」




《그렇네.
게다가 시간은 어쨌든, 여기는 야마토 같고》





무라마사의 견해에, 수긍한다.
이것은 야마토의 바다다. 아마도 태평양 쪽.

하늘을 보면, 밤하늘의 양상도 그 가정을 증명한다.
익숙한 별자리가 보이고, 달도――


「……………………」





《? 왜 그래?》





「달이」





《달?》





「……쪼개져 있다」





《하?
……잠깐, 엉뚱한 말 하지마》




《진정해.
달은 차고 빠지긴 하지만, 쪼개질》








《리갸――――――!?》






쪼개져 있었다.
몇번을 보아도, 착각이라 믿고 다시 보아도.

지구의 지보, 아름다운 위성은 완전히 쪼개져서 부서져 있었다.

만월……이겠지. 진짜라면.
그것이, 바닥에 떨어뜨린 접시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달의 탄생에 대한 일설을 떠올렸다.
지구 주변에 감돌고 있던 물질이 인력의 영향으로 집적하여, 이윽고 달을 형성한 것이라고 한다――


《잠, 우, 우짜셩다다다달》






「진정해라」







착란해서 이계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한 무라마사를 가로막는다.





「여기가 수만년……정도가 아닌가……

수억년 이상 옛날의 지구상이란 가능성은 있나?」





《에?

그~게……》





《대강 수백년 범주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을 거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변도, 그런 식으로는 안 보이고》







동의할 수 있다.

달이 태어난 것은, 확실히――지구와 거의 동시라 들었다. 그렇게 되면 수억년 전마저 아닌, 수십억년 전이다.


도저히, 여기가 그런 태고의 지구 위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어떻게 된 일인가.


여기가 달의 생성과정에 해당하는 시대가 아니라면.


……미래?

장래, 달은 어떠한 이유로 쪼개지는 건가?


인류의 월면개발이 전대미문의 대실패를 범하는 것일까.

혹은 이성인과의 결전장으로――?



《…………》






「…………」






《앗》






「……음?」







무라마사는 혼란이 꼬리를 물어서, 나는 머리가 SF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탓이겠지. 그것을 깨닫는 것이 늦었다.


사람이 있다.


발자국을 점점이 남기면서, 걸어가는 그림자.

나한테서 보이는 것은 뒷모습이며, 어둡기도 해서, 그리 확실하진 않지만――아무래도 여성인가.


그녀는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느꼈겠지.


느닷없이 이쪽으로, 되돌아본다.

위험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도 없었다.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대면한다. 





……모르는 여성이다.


나는 그녀를 만난 적은 없다.

그것은 단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왠지,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전모에는 기억이 없는데, 부분부분이 걸린다.

예를 들면, 저 두 눈동자――



「…………」







거기서는 홀연히 나타난 무자――이겠지. 그녀 입장에선――를 보고서, 동요의 편린도 솟지 않았다.

이 경치처럼 그저 조용하게,

정말 작게 물결치고 있다.


먼 과거를 보는 시선이었다.

혹은,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눈.


그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나도, 무엇 하나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몇초만 멈춘 그 발걸음이, 다시 앞을 향한다.

걸어서 떠나간다.


똑바로.


그녀는 이제 멈추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







<우우우우우우웅―>





《미도우》






「그래」







시공간의 일그러짐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거, 누구야?》






「모른다」






《……정말?》






「왜 의심하지」






《……뭐 됐지만.

그것보다, 조심해》





《아마도, 이걸로 원래대로――》













카게아키가 넘나든 각 시공간들은 흥미로운 떡밥이 여럿 있습니다.

지금의 카게아키도 공포를 느꼈던 모 시종님의 젊은 시절이라든가, 달이 부서져 있는 미래에서 만난 이치죠의 모습이 그렇지요.


그리고 그 동안 정보가 거의 없었던 리틀 걸의 출신도 어느 정도 밝혀졌습니다.

정황을 생각하면, 리틀 걸은 아마도 독일의 유데아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듯합니다.

그녀가 품고 있었던 압도적인 악의는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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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触らぬ神に祟りなし. 일본의 속담 중 하나. 재앙신은 우러를 뿐이지 건드려선 안 된다는 말. 흔히, 괜히 건드리면 탈이 나니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로 쓰인다. [본문으로]
  2. 일본의 관용어 중 하나인 "달군 돌에 물(焼け石に水)"을 살짝 변형한 것. 무라마사는 달군 돌에 물을 끼얹는 것도 헛수고인데, 이것은 물은 커녕 물방울 밖에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3. 체이테(Csejthe). 악명 높은 에르체베트 바토리가 거주하고 있었던 성의 이름. [본문으로]
  4. 서양 문자. 서양 문자를 처음 접했을 때 일본은 세로로 적는 자신들과 달리 가로로 적은 이 문자를 게문자라고 불렀다. [본문으로]
  5. 안드레아 게일호. 1991년 미국 메사츄세츠 보스턴 북쪽에 위치한 어부도시 글라우스터에서 출발한 소형어선. 당시, 여러가지 조건이 맞물려서 발생한 사상최대규모의 태풍에 휘말려서 침몰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퍼펙트 스톰'이란 영화도 있다. [본문으로]
  6.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의 도시. [본문으로]